작성일 : 14-08-21 11:25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후의 한중관계전망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07  

이글은 2014년 8월 18일 4월회 정례오찬모임에서 행한 강연의 전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후의 한중관계전망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이 영 일

  1. 들어가면서

시진핑 주석의 지난 7월의 한국방문은 한중관계의 역사에서 새로운 획을 긋는 전환점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중국이 지난 60년 동안 유지해온 한반도정책의 중점이 친북(親北)에서 남북한 균형으로 바뀌다가 이제 친한(親韓)으로 정책의 큰 틀이 전환을 보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1989년 중국에서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해 11월 중국을 15일 동안 여행한 일이 있다. 베이징을 거쳐 칭다오, 항조우, 샹하이를 거쳐 홍콩으로 나오는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때 나의 통역을 도와준 張律 (지금은 영화감독)씨에게 조만간 중국에서도 개발붐이 일어나 서울처럼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등소평의 개발독재 형 발전방식이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한국처럼 변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심화되면 될수록 한중간의 체제차이는 줄어들고 교류와 협력이 확대될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3년전 연세대학교의 초빙교수로 한국을 방문한 장률감독이 어떻게 중국의 미래를 그토록 정확히 예견했느냐고 나에게 물어서 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한국의 개발연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능히 상상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개방보다는 폐쇄, 개혁보다는 통제, 세습 수령 독재체제를 고수하면 중국과 북한간의 거리는 계속 멀어지고 한중관계는 더 긴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시진핑 시대의 한중관계가 이렇게 변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를 살펴보기로 한다.

  2. 북한의 핵무장 기도를 보는 중국의 시각

 중국은 처음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미국을 상대로 하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저평가하거나 북한의 핵개발자체를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경시했다. 그 후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문제를 적극 제기하던 1994년까지만 해도 대미관계 개선을 노리는 북한의 외교공세로 간주했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의 중요과제로 부각되면서부터는 중국은 북핵문제의 군사적 해결보다는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6자회담을 주선하여 의장국이 되고 외교적 해결을 주도하는데 앞장섰다. 6자회담을 통해 중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를 국제사회가 지불하는 방식으로 2005년의 9.19합의를 끌어냈지만 이러한 합의의 이면에서 북한이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을 추구해왔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북한은 6자회담을 보이콧하고 모든 합의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어 북한은 제1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유엔이 여기에 제재결의를 하자 이에 맞서 2010년 제2차 핵 실험으로 대응해왔다.

2년 뒤인 2012년 제18차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부터 북한의 한국에 대한 대소 도발의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요구를 묵살하고 2012년에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데 이어 2013년 제3차 핵 실험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은 중국의 우방으로서의 충고보다는 선군의 위업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가장 강도 높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중국이 찬성토록 지시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안보리 결의사항을 준수하도록 조치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외교부는 2012년부터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6자회담을 재개하여 핵 포기의 대가로 경제 원조를 제공함은 물론 북한의 체제보장에 필요한 동북아시아 평화체제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는데도 북한은 이 제안마저 지금 거부하고 있다.

  3. 시진핑 시대의 북핵문제

  필자는 그간 북한 핵문제를 연구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건설을 서두른 동기에 주목했다. 북한은 미국의 북한 압살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건설을 서둘렀다고 주장하고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장착, 미국본토까지를 공격하겠다고 호언해왔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형식적 명분이며 실제로 북한이 핵을 갖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세습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것이 가장 큰 내적 이유다.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은 실효(實效)적인 동맹인데 반해 중국과 북한이 체결한 북중동맹(19612021)은 더 이상 북한 안보의 확실한 보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앞세운 실용파정권이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하는 것을 보고 毛澤東 시대에 체결된 이데올로기를 골간으로 한 북중동맹은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간주, 핵개발을 통한 자력방위계획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소련이 한국과 수교를 결정하고 이 사실을 통보하기 위해 세바르드나제 외상이 평양을 방문,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을 때 소련이 이렇게 나가면 우리는 핵무기를 가질 도리밖에 없다고 유감을 표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동부유럽공산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 중소양국의 한국과의 수교 등 내외정세의 변화 속에서 북한은 자구책으로 핵개발을 획책한 것이다. 북한 핵개발의 추정시기와 한중수교 시기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주석으로 선출되기 전인 국가부주석 시절 중국공산당 중앙당학교 교장을 겸직하면서 당 학교 전문가들과 북한의 핵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교 이론가들은 북한의 핵은 미국에 대해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중국에 대해서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특히 이들은 김정일의 반중국(反中國) 언동을 심도 있게 분석, 시진핑에 보고했고 또 3차 핵 실험의 여진(餘震)이 중국동북지방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부터 북 핵 경계론은 중국의 큰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 시진핑은 기왕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2013524일 김정은은 중국에 특사로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을 보내 핵 무력과 경제건설 병진정책을 시진핑 주석에게 설명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즉석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곧이어 2013627일부터 3일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다. 특히 이번 訪韓에서는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생산을 확고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가입했기 때문에 핵무기생산반대라는 표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북한을 지칭하는 것이다.

  4. 시진핑의 대한반도 정책

시진핑 주석은 지난 73일부터 4일간의 한국방문은 이글의 서두에서도 지적했지만 한국을 한반도 문제해결의 중국 측 파트너로 격상시킨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시진핑 주석은 방한기간 중 북한에 대해 특별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난징 대학의 주펑(朱鋒)교수는 말 아닌 행동으로 북한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주펑교수는 시진핑 주석은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먼저 한국을 방문했고 북한 새 지도부와의 접촉이나 대화를 가진 바도 없이 한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먼저 가진 최초의 중국지도자라고 강조하고 중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남북한에 대한 평형외교정책을 뒤집고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협상파트너로 한국을 택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중국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핵 무력과 경제건설의 병진정책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북한은 핵문제에 관한 한 고립무원(孤立無援)이고 사면초가(四面楚歌).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도 비공식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들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 이사국 중 한 두국가로부터 핵 보유를 비공식으로 지지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어느 한 나라로부터도 핵 보유를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서울대학교의 연설에서 수교 22년간 한중간에 일어난 긍정적 변화를 직접 열거했다. 한중무역총액이 한미무역총량, 한일무역총량, 한국유럽무역총량을 합한 것보다 많은 2500억 달러이고 한중간에는 연간 822만 명의 인적왕래가 이뤄졌고 매주 870여 편의 항공기가 한국과 중국의 주요도시를 연결하고 있고 가장 많은 유학생이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과 북한 간에는 무역총액이 연간 65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의 이 발언을 한국의 입장에서 재해석하면 이제 한국은 경제면에서 보면 어느 경우에도 중국을 반대하거나 적대할 수 없는 국가로 변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무역총량 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도를 기준으로 할 때 26.1%인데 비해 중국무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이다. 시진핑의 눈에 보이는 오늘의 한국은 친미(親美)국가임과 동시에 친중(親中)국가인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바 금년 내에 한중FTA가 타결되면 양국 간의 지역통합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고 한중간에 해양영토협상이 내년부터 시작해서 해결된다면 한반도의 해상영토문제해결의 주도권을 한국이 갖게 된다.

시진핑 주석은 또 한중양자관계와 관련해서 한중간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한층 더 구체화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양자 관계에서의 한중 관계를 공동발전을 실현하는 동반자,지역에서의 한중 관계를 지역의 평화에 힘쓰는 동반자, 경제무역 관계에서 한중 양국을 함께 아시아를 진흥시키는 동반자세계에서의 한중 양국을 세계번영을 촉진시키는 동반자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양자관계를 넘어서서 미중관계를 포함하는 국제정치상의 주요 외교파트너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한국을 친중(親中)국가로 정의한다면 그간 북한을 중국안보의 완충지대라거나 중국과 순치(脣齒)관계에 있다는 중국학자들의 표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북한역시 중국에 에너지와 식량의 70%를 의존하기 때문에 중국의 지원 없이 한국에 대한 도발일변도정책을 밀고나가기가 쉽잖을 것이다. 한중관계는 시진핑 주석의 이번 국빈방문을 계기로 분명히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5.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앞으로의 과제는 한반도분단의 현실을 봉합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도 이번 방한과 작년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최근 동아시아 정세가 영토문제나 역사인식문제로 도처에 긴장이 야기되고 있지만 한반도처럼 긴장이 일상화 된 지역은 없다. 북한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전후해서 여러 차례 미사일발사나 로켓발사를 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