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연길지회 제2회 한문화컵 한글글짓기대회 동상 작문(2)2019-08-06 16:37:36
작성자 Level 10

호기심에 차서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가 보니 모두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만단의 무용자태준비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흠칫 놀라버린 제가 어머닐 쳐다보니 어머니께선 제가 선생님이 될거라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자랑스레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다들 열다섯 밖에 안되는 저를 선생님 환영합니다 하며 큰 박수로 맞아주어 가슴은 말할 수 없는  희열로 차올랐다. 나의 꿈은 장차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면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였다. 정식은 아니지만 몇일 동안이라도 어머님배려로 선생이 된 것이 꿈만 같았다. 그것은 오래 꿈꿔왔던 선생님을 여기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될 수 있어서였다. 하여 나는  모든 힘을 다해 성의껏 어머니한테서 배워 온 무용 동작들을  특수한 학생들께 가르쳐 주었다. 힘겨웁고 약간은 애가 탔지만 아주머니들의 춤자태가 점점 숙련되여 가는걸 보면서 나는  보람을 느끼며 기쁨을 느꼈다.

알고보니 춤추는 분들은 그저 보통 분이 아니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사, 의사, 기자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분들 이였다. 이런 분들의 무용선생이 되여 이 분들이 춤추는 절목이 한국 귀빈들한테 보여주게 된다는 나는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아버지의 정성

연길시 실험중학교 1-3 김성심

아버지는 사랑 표현을 할줄 모르시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한테 보슬비 같은 사랑과 정성을 기울이신 엄마와는 달리 우리 아버지는 정성은 커녕 나한테 관심조차 주시지 않은것 같다.

어릴 때의 사진을 보면 내가 처음 걸음마를 떼였을 때에도 처음 말을 시작했을 때에도 항상 엄마가 내 옆에 계셨고 아빠는 한켠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만 보셨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나는 피아노를 배우게 되였다. 집에 돌아와 배운 솜씨를 뽐낼 때면 엄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 딸 너무 잘하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아직은 부족해, 좀 더 노력해야 돼.》라고 하면서 찬물을 끼얹으셨다.

매번 시험성적이 리상적으로 나오면 언제나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신건 변함없이 엄마였고 가끔 성적이 엉망진창이면 변함없이 나한테 매를 안기는건 아빠였다. 아빠는 그처럼 정이 없고 무심하며 냉정하게만 느껴졌다.

컴퓨터나 텔레비죤앞에 마주 앉기만 해도 험상궂은 얼굴로 불호령을 내리시는 분도 다름아닌 아빠다. 수없이 원망스럽고 리해되지 않지만 공부를 하지 않고 컴퓨터게임에만 빠질가봐 걱정하시는 마음은 어느정도 알 것 같다.

한번은 내가 아버지한테 자전거타기를 배워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는 방법만 간단히 설명하시고는 나더러 혼자서 타라고 했다. 내가 넘어지면 어머니는 달려와 나를 부축하셨지만 아버지는 도리여 손을 내저으시며 어머니더러 가라고 했다.

《당신은 비키오. 혼자 해야지. 얼른 일어나서 다시 타봐!》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조금씩 진보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의 정성이 따뜻함과 부드러운 손길에 있다면 아빠의 정성은 랭정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꾸지람속에 있다는 것을…아빠의 매서운 바람 같은 차디찬 사랑이 있었기에 난 따뜻한 온실안의 화초가 아닌 저 비바람속의 소나무로 건실히 자랄수 있었다.

믿 음 

연길시 중앙소학교 5-1 시혁

믿음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 

어느 하루 나는 어문작문복습반에서 선생님과 이렇게 약속했다.

《선생님,지금 초고를 쓰고 집에 가서 정리를 하여 됩니까?》

《됩니다. 집에 가서 꼭 정리를 해오시오.》

나는 초고를 쓰고 콧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생각했다.

(집에 가서 먼저 컴퓨터유희를 놀고 천천히 하자. 일찍 집에 가니 참 좋구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컴퓨터부터 놀았다.

«신선놀음에 도귀자도 썩는줄 모른다»더니 어느새 9시가 되였다.

(래일에 어문작문복습반에 가서하면 되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잠을 쿨쿨 잤다. 

이튿날 어문작문복습반에 가자 선생님은 나와 물어보았다.

《정리는?》

《못썼어요.》

《약속을 잊었으니 이젠 시혁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믿음은 깨졌어요. 작문정리는 학원에서 하고 가세요.》

나는 할수없이 매일매일 어문작문복습반에서 정리까지 다하고 갔다.

이제부터라도 믿음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나는 그제야 느꼈다.

믿음이란 딱 기회가 한번이고 한번 잃으면 무엇으로 보상하기도 힘들구나!

뜻 깊었던《9.3》명절

신흥소학교 6-5 윤향리

금년 9월30일은 우리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돐 잔치날이였다. 뜻깊은 명절을 맞으면서 사람마다 분주히 서둘렀다. 소학생인 우리도 방학이지만 휴식을 포기하고 60년래 연변의 휘황한 발전성과를 노래하는《연변찬가》라는 대형표현의 배경표현을 하게 되였다. 

연길시 7500여명의 소학생들은 아침 4시부터 점심까지 쨍쨍 내리비추는 해빛아래에서 80페지나 되는 배경책을 펼쳤다. 어떤 학생들은 더위를 먹고 쓰러져도 점적주사를 맞으면서 연습을 견지하였다. 신체가 으뜸이라도 장함을 하였던 나지만 명절전날에는 코피가 저절로 쏟아져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얹고 누워있었다. 날마다 걱정하시던 할머니는 청가맡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한사람만 빠져도 배경에 큰 영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는 나는 끝까지 견지하였다.

기다리고 기다렸던《9.3》명절날이 드디여 돌아왔다. 연길시 거리곳곳마다 명절 맞는 분위기로 꽉 찼다. 경축대회장에는 6만여명의 관중들로 꽉 찼다. 우리는 지도선생님의 지휘하에 열심히 배경책을 펼쳤다. 온 오전 자리를 지키면서 연출 한번 볼수 없지만 열심히 한폭한폭의 멋진 화면을 만들어 냈다. 새로운 화면이 펼쳐질때마다 주석대와 관중석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소리와 함성이 울려펴졌다. 나는 더없이 자랑스럽고 흐뭇했다. 연습할 때 힘들다고 불평도 부렸고 짜증도 났었지만 뜻깊은 우리 조선민족의 명절에 연길시 꼬마주인으로서 자그마한 힘이지만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없이 뿌듯하였다.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연길시 건공소학교 6-2 김운미

안녕! 늘 나는 너에게 충고하고 싶어서 필을 들었어. 나 자신을 이겨야 남을 이길수 있단 말이 있잖니! 그래서 너를 확실히 알고 싶었거든.

너는 참 다재다능한 아이야! 너는 미술경색에 나가서 등수를 놓친 적이 없었고 영어 경색에서도 등수를 놓치지 않아서 선생님에게 많이 칭찬을 받지. 아참! 그리고 너는 운동도 잘해! 매번 운동대회에서 나가 달리기 경색을 했었지. 너는 올림픽수학도 잘해. 등수를 든 적도 있었어.너는 호기심이 많아 뭐든지 노력하면 될 것 같아!

너는 승부욕이 강한 아이야! 90점 아래를 맞았을 때 너는 승부욕이 불타 어머니한테 틀린 문제를 물어보고 계속 반복하여 풀기도 했어! 그리고 넌 남에게 지기를 싫어했어! 수학문제를 풀 때도 5등안에 합격해야지 너무 늦게 했을때 막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어. 너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단 말이야.

너는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어. 너는 너무 게을러. 아침에 일어날 때도 5분만 5분만 하다가 지각을 할 때가 많지. 그리고 넌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킬 때도 나가기를 싫어했어. 그리고 넌 참 리기적인 아이야! 남에게 학용품을 빌려주기도 싫어하고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넌 말보다 실천을 안해 계획표를 세우고는 그걸 실천하지 않았어. 그리고 넌 자기의 단점을 고치자 하고 말하고는 고치지 않거든!

다음부턴 니가 남을 생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길 바래! 그리고 단점을 고쳐 예쁜 소녀로 되길 바래! 

자신을 사랑하는 운미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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