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4.19혁명과 통일문제2019-08-06 16: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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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과 통일문제

이글은 이영일회장이 2013년 4월 9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강당에서 사단법인 4월회가 주최한 4.19문화상 시상식에서 행한 강연 전문이다.  


                                                                              이 영 일(한중문화협회 회장) 

1.들어가면서,

4.19혁명도 금년으로 어언 53주년을 맞게 되었다. 벌써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지금부터 53년 전 4.19혁명의 현장이었던 한국은 오늘날 지구촌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꼭 달성해야할 목표의 하나인 통일문제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4.19혁명의 현장인 한국은 원래 하나이었고 결코 둘이 되어서는 안 될 조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였다. 4.19혁명은 민주주의적 국민권리를 억압하고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자는 국민적 논의를 억압한 독재정권타도를 목표로 하는 혁명이었을진데 민주화만으로 4.19혁명에 주어진 역사적 과업이 완성되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조국의 통일문제가 미결상태로 남아있는 한 4.19혁명은 아직도 미완의 혁명인 것이다. 

한기찬 4월회 회장이 저에게 오늘 이 자리에서 4.19혁명과 통일문제를 주제로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 저는 비록 여러 가지로 주제를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 70년대 10년 동안 통일부(당시는 국토통일원)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근무해왔던 경험, 국회의원을 세 번 역임하면서 국회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한 경험, 한민족복지재단 공동대표로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을 위해 5회에 걸쳐 북한을 다녀왔던 경험, 또 지난 15년 동안 한중문화협회를 이끌면서 중국의 움직임을 보아왔던 경험 등을 회상하면서 나름대로 우리 세대가 가져야할 통일문제의 현황과 전망을 간추려 볼 생각이다. 

2. 통일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흔히 잘 아는 단어라도 그것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려면 매우 힘들거나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생각해야 할 통일이라는 용어도 이 점에서는 크게 예외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거나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표현은 한국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통일 표현인 반면, 북측에서는 “온 겨레가 일일천추 갈망하는 통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따져 묻는다면 답변하기가 결코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다. 통일의 정확한 정의는 더 힘들어진다. 요즘에는 남북한에서 그렇게 흔히 쓰이던 통일이라는 표현의 사용빈도도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통일전망이 밝지 못한데다가 북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긴장에 휩싸이면서부터 전쟁이냐, 평화냐의 문제가 통일문제보다도 더 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문제는 이처럼 개념의 정의도 힘들지만 통일방법, 과정, 접근방법의 문제도 의외로 다양하여 일의적으로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오늘날 남북분단의 큰 배경이 되었던 동서간의 냉전도 사실상 끝나고 더욱이 한국과 유사한 분단국이던 동서독이 통일을 성취한 상황에서 우리가 겨냥할 수 있는 통일이 무엇인가를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해야 할 도전에 직면했다. 

변화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우리의 통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지금 우리 앞에 나서는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이다. 저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하면서 우리의 통일의 여건과 상황을 살피면서 우리가 달성 가능한 통일목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국제정치차원에서 보면 오늘의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한반도의 관리주체를 남북한의 어느 측으로 정하는 것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 공존공영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검토해야 하고 이러한 국제정치적 요청을 감당할 체제가 남북한 어느 체제인가를 밝혀 국제정치적 요청과 이를 수용, 소화해나갈 국내정치적 요청을 조화시키는 관점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깔면서 우리의 통일을 모색하기로 한다. 

3. 분단국가와 통일 상황

제2차 세계대전의 총성이 멎은 후 지구의 여러 곳에서 원래 하나였던 국가들이 둘로 양분되는 국가분단의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었다고 해서 분단국가의 성질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본토와 대만으로 갈라진 것은 내부혁명의 결과였다. 즉 내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나라의 통일문제는 외세가 개입할 여지나 명분이 없고 통일문제도 당사자 간의 합의로 해결될 수 있다. 즉 통일문제가 자주적으로 해결 가능한 국가의 범주에 포함된다. 남북예멘이나 아프리카 몇 개국들은 분단의 원인이 내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내란의 종결과 함께 통일문제들이 해결되어졌다. 

그러나 한국이나 독일처럼 당사자들의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대국 정치의 필요성에서 국토가 양단된 국제형의 분단국가들은 당사자 간의 합의와 더불어 주변 국가들의 협력과 지지가 필수적 요건이 된다. 독일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시계대전을 발발시켜 유럽 대륙에서 백인이 백인을 죽이는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평화를 위해 주변대국들이 의도적으로 독일을 분할시켰다. 독일지도자들은 분단의 원인을 명확히 인식하였기 때문에 독일통일을 반대하는 주변국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들의 독일 통일반대명분을 약화시키는데 주력하였다. 

독일 통일을 주도한 서독은 세 가지의 중요한 통일노력을 대내외적으로 전개했다. 

우선 대내적으로 보면 냉전시기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일원이 되어 안보를 지탱하면서 서독을 민주국가로 재건하고 통일의 물질적 토대를 닦는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아울러 빌헤름 황제나 히틀러에게 내맡겼던 주권을 독일 국민들이 되찾고 또다시 제2의 히틀러가 탄생하여 독일을 반 유럽적으로 퇴행시키는 것을 방지할 정치교육을 강화하였다. 동시에 유태인이나 폴란드 인들에게 나치독일이 가한 모든 만행을 철저히 회개, 보상하고 나치가 탈취한 영토를 해당국들에게 반환하였다. 

서독은 동독과의 관계에서는 양 독일 간의 기본관계 잠정협정을 체결한 후 교류와 협력을 심화시키면서 우선 양 독의 비핵화를 합의 실천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였다. 특히 대량살상무기로서의 전략무기를 생산하거나 보유하지 않기로 합의함으로써 독일통일이 가져올 주변 국가들의 안보불안을 해소하였다. 

셋째로는 유럽의 통합에 앞장섰다. 독일 통일을 유럽통합의 한 구성부분으로 인식하면서 독일 통일을 EU의 확대로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독일의 이러한 통일노력이 주효하여 냉전해빙과 동시에 서독을 전체 독일영토의 관리주체로 만드는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형식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하였다. 독일의 통일역사는 우리나라의 1300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짧다. 1871년 비스마크의 통일을 기점으로 할 경우 74년 만에 분단되었다가 44년 만에 다시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4.남북한 관계의 회고

3. 4.19혁명과 통일문제 

오늘 이 자리는 4.19혁명과의 연관성에서 통일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우리가 4.19혁명과의 연계에서 통일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주목해야할 과제는 통일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살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국민을 주권자로 정의(定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통일의 주체도 국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통일달성의 이익과 분단지속에서 오는 고통, 불행과 불편을 감내해야할 주체도 국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통일의 주체인 국민이 주권자가 된 것은 1960년의 4.19혁명이 성공한 이후부터라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주화는 내부의 정치적 성숙의 결과라기보다는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하에서 정부가 수립되었고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지는 헌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국초기의 한국에서는 헌법상 주권은 국민에게 있었지만 당시의 진정한, 실질적인 주권자는 국민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나 관료였다. 주권재민(在民)아닌 주권재관(在官)이었다. 그러나 1960년 4.19민주혁명이 성공하면서부터 국민 스스로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각성하게 되었다. 

4.19혁명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 군부가 헌법외적(extra-constitutional)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군부를 향한 국민들의 저항이 계속되는 가운데 군사정권들도 4.19의 민주혁명정신을 준수할 것을 다짐했고 주권자로서의 국민을 두려워하면서 국가발전을 추진하였다. 이 결과 한국은 국민을 주권자로 섬기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경제발전을 추진함으로 해서 현재 세계랭킹 10위권에 이르는 성공국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군 점령 하에 있던 북한은 공산당이 주권을 행사하는 독재국가가 되었고 독재권력을 합리화하는 이른바 주체사상과 수령 독재를 내세우고 권력을 부자간에 세습하는 현대판 동양적 전제국가(Oriental Despotism)의 길을 걷게 됨으로 해서 오늘날 지구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아직도 2200만 북한 동포들은 주권 없이 수령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받으면서 중세시대의 농노(農奴)처럼 배고픈 땅에 묶여서 생을 이어가고 있다. 

4. 한반도의 분단 상황 

5.. 주권의 소재에서 본 남북한 상황

오늘의 세계는 크게 나누어보면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로 나뉜다. 주권이 국민에게 없는 나라는 1인 독재국가이거나 1당 독재국가이다. 그러나 독재국가들 가운데서도 개혁개방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소통과 내왕이 자유로운 나라가 있는가하면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차단한 가운데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찾아 떠나는 권리마저 허용 않고 굶거나 먹거나 자기나라에만 묶어두는 패쇄적 독재국가도 있다. 

오늘의 세계에서 인간의 운명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어느 나라에서 출생했느냐에 따라 행복의 수준-자유나 복지-이 결정된다. 미국의 글로벌 발전연구소의 Charles Kenny는 좋은 나라, 즉 국민이 주권자인 나라에 태어나면 자기개인의 노력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향유한다고 말했다. 주권자로 대접받는 나라에 태어난 인간은 비주권자로 태어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비록 주권은 없더라도 외부와의 소통이 허용된 국가에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나라에 태어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가 있고 적어도 굶어죽지 않을 수준의 물질적 혜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유능하고 근면하고 가정이 화목하더라도 국민의 주권이 철저히 부정당하는 국가에 태어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도, 발전할 수도, 꿈을 가질 수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從北)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도 월북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인민이 주권자가 아닌 정권 밑에서 겪는 인간의 비극을 그들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북한은 외부와의 소통이 막힌 최악의 1인 독재국가이다. 독재 권력도 3대에 걸쳐 세습되고 있다. 권력이 세습되기 때문에 전임자의 잘못이나 과오를 시정하기 힘들다. 개혁개방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선군(先軍)정치가 국민들의 복지와 관계없이 유지된다. 독재 권력을 유지시키는 힘이 선군정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한 남북한 간에는 인민개념(주권 없는 인민과 주권 있는 인민의 차이 때문에)이 공유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은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5. 21세기 시대의 큰 흐름

바야흐로 21세기는 주권 없는 국민들이 지구의 도처에서 독재자들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는 투쟁의 문을 열었다. 작년 한 해 사이에 중동과 북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주권 없는 국민들이 주권을 되찾는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국민주권을 부정하고 1인 독재를 구사했던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에서 국민들은 투쟁을 통해 주권을 회복해 가고 있다. 시리아와 예멘에서도 민주화의 불길은 번져나가고 있다. 미얀마에서도 주권이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중이다. 재스민 혁명의 물결은 그 파고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평양에도 봄은 올 것인가’. 이것은 시 구절이 아니다. 평양에도 반드시 봄은 온다. 북한 동포들이 주권을 되찾을 평양의 봄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봄꽃은 꼭 섭씨 15도(Critical Mass임계질량)가 되어야 핀다. 지금 평양의 온도는 몇 도일까. 현재의 온도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없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국제정치전문가들도 소련의 붕괴나 중동에서 시작된 재스민혁명의 물결을 예측 못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예측을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와야 할 사태가 비켜가지는 않는다. 북한 땅에서는 주체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펼칠 여지가 현재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북한주민이 독재에 저항할 유일한 수단은 탈북뿐이다. 이점에서 탈북이야말로 최고의 투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탈북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평양의 온도는 이미 10도 넘어선지 오래인 것 같다. 배고픔을 틈타 외부세계로부터 유입되는 지식과 정보가 북한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사상강국(思想强國)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 경제강국의 꿈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들은 오늘 날 핵미사일 체제만 갖추면 그것이 곧 강성대국이라고 주장하면서 핵무장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침략위협이 사라지면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논리를 당 학습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핵미사일로 인민의 저항은 잠재울 수 있지만 핵미사일을 유지 관리할 힘이 없는 북한은 결국 인민의 경제적 욕구를 해결할 방도를 마련할 수 없다. 

정권으로부터 배급이나 온정을 기대할 수 없는 인민들은 탈북하거나 탈법(脫法)으로 생계유지의 수단을 강구한다. 주민이 가난하면 권력집단의 하수인들(보안요원 등 당 간부와 관료)도 가난한다. 북한권력의 하수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비리, 부정부패, 독직이다. 모든 독재 권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부패에서 북한의 독재자들은 결코 면책될 수 없다. 개혁개방이 되지않는 한 평양의 온도는 비록 더디지만 계속 15도를 향해 오르고 있다.

6. 급변하는 주변정세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은 북한의 주변정세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에 대해 4회(결의 1718, 1874, 2087, 2094호)에 걸쳐 제재결의안을 상임이사국 전원 일치로 가결시켰다. 이 결의는 처음에는 권고안이었으나 3차 결의부터는 회원국들에게 구속력을 갖는 결의로 제제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 결의보다 더 중요한 정세변화는 중국의 대북태도에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제3차핵 실험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원칙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했지만 북핵문제의 본질을 미국과 북한간의 문제로 간주하고 중국은 제3자 입장에서 미 북한관계를 조정하는 위치를 고수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화의 바로 직전단계인 제3차 핵 실험에 이르자 중국도 북핵문제가 미 북한간의 문제만이 아닌 중국자신의 문제임을 각성하게 되었다. 

최근 덩위원(鄧聿文)이라는 중국공산당 당학교의 한 간부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올린 글(2013년 2월 28일 9면)에 잘 간추려져 있다. 그는 이 글에서 북한이 일단 핵무장을 끝낸다면 제멋대로 날 뛰는 (capricious)김정은 정권은 중국을 상대로 핵 공갈을 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평양방문 시 북한지도자들은 그들의 경제적 궁핍이 중국의 "자기이익만 챙기는(Selfish)" 전략과 미국의 제재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6자회담 탈퇴를 암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북 핵은 미국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이 북한에 좋은 신호를 보내기만 한다면 북한은 중국을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보루(堡壘)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면 붕괴될 정권인데 중국은 왜 조만간 실패에 직면할 그러한 정권과 유대관계를 지속시켜야 하는가를 자문(自問)했다. 이어 그는 중국과 북한은 이데올로기가 같다고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차이는 중국과 서구와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은 냉전기에는 중국에 유용했지만 이제 북한을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보는 것은 시대에 뒤진(outdated)견해이며 오히려 조ㆍ중 동맹은 북한의 위험스러운 행동으로 중국에까지 불통이 날아들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은 이제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간 중국은 북핵문제는 미국과 북한 간의 양자문제라고 말하고 중국은 미‧북(美北)양자 간 대화의 중개자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6자회담은 바로 중국의 이러한 관점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한 핵실험의 시간만 벌어주고 아무 결실 없이 북한의 탈퇴로 끝장났으며 북한 핵실험의 진파(震波)는 이미 두 차례나 중국의 동북지방 사람들에게까지 위험스러운 사태로 감지되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의 핵실험 반대시위가 중국동북지방과 광동지방에서 나타났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과연 북한이 중국에 유용한 전략자산인가, 중북관계를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 것인가를 묻는 논의가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공공연히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중국의 선택은 무엇일까. 미중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장래문제를 논의하고 비핵화되고 개방된 한반도의 미래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미중의 입장이 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선택하지 않고는 경제개발을 이룩할 수 없으며 정권의 주체가 개혁개방노선을 걷는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저지하지 않으면 핵 도미노 아니면 긴장이 고조될 뿐이기 때문이다. 

7. 통일상황의 점검

한반도는 동서독처럼 국제형 분단국가이다. 통일을 이룩하려면 남북당사자간에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자주성의 문제와 주변국들의 협력이라는 국제성문제가 조화를 이룰 때 통일이 달성 가능해 진다.

독일은 양독 간의 기본관계 잠정협정을 체결한 후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우선 양 독의 비핵화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포기를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둘째로는 독일에서 나치와 같은 반 유럽적 세력의 재등장을 막는 정치교육을 철저히 실시하고 인간성과 평화대해 범죄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단죄를 이행함으로써 독일 통일에 대한 내외의 장벽을 제거했다. 

한반도는 분단의 역사적 배경이 독일과는 다르지만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할 경우 지정학적 위치상 주변국가들의 안보불안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에 반드시 외세가 개입하기 마련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외세개입의 전형인 6자회담을 불러왔던 것이다. 

들째로 독일은 유럽공동체의 발전을 선도하면서 유럽통합질서의 일부로 독일 통일을 추구하였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비핵호가 보장되지 않는 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불가능하다. 둘째로는 동북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일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할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휴전체제를 동북아시아 평화의 큰 틀 형성의 일환으로서 평화체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적극 모색할 기회가 올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대전제가 다름 아닌 북한의 개혁개방이다. 여기에 한국, 중국, 미국이 상호 협의 하에 추진해야할 공동의 과제가 있다. 개혁개방을 통한 북한사회의 발전이 통일의 가능의 역(域)을 확대시킬 것이다. 

8. 전망과 과제

결국 남북한이 발전 면에서 세계사의 현재라는 시간과 민족사의 현재라는 시간을 일치시킬 만큼 공동으로 번영 발전해야 한다. 한국이 민주화되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다고 해서평화통일의 여건이 모두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한국과 더불어 북한도 민주화되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져야 ‘남북한이 서로 잘사는 상태에서 만나는 통일’을 내다 볼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북한 동포들이 하루속히 북한의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곧 공동발전과 통일의 지름길이다.

지금 북한 땅에는 무주권(無主權)의 동포들이 2200만 명 넘게 살고 있다. 4.19민주혁명이 국민을 국가의 주권자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아직도 주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주권을 찾게 하여 북한 땅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 앞에 나서는 4.19혁명의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 53년 전 4.19혁명은 한국국민들을 주권자로 대접받게 만든 민주혁명이었다. 그러나 4.19혁명은 현재까지는 남한만의 민주화에 공헌한 혁명이다. 북한 동포들이 북한의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되찾아 북한의 실질적 주인이 되도록 만들었을 때 비로소 한민족 전체의 민주화에 기여한 혁명으로, 나아가 민족의 평화통일에 공헌한 혁명으로 4.19혁명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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