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박2일의 파인비치 골프여행2019-08-06 12:53:31
작성자 Level 10

1박2일의 파인비치 골프여행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나는 2010년 11월 하순의 쌀쌀한 날씨를 뒤로 하고 새벽6시 영어로 C씨 성을 가진 세 명의 친지(蔡씨, 秋씨, 崔씨)들과 자동차 한 대로 한반도 최남단에 새로 개장된 골프장을 향해 여행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해남군 화원반도에 해안을 끼고 해송을 원형대로 보존하면서 새롭게 조성한 파인비치 골프코스이다. 내비게이션을 점검해보니 한반도의 중부에서 서남단을 가로지르는 서해안고속도로로 접어드는 데는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가장 빠른 길은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서산으로 빠지는 코스였다. 이 길을 타면 2시간 정도 걸려 군산에 이른다.

  

차창에 비친 늦가을의 들녘은 추수뒤끝이라 그런지 벼 잘린 그루터기들과 볏 집을 말아놓은 흰색의 두루마리들이 군대 군대 시야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시간에는 안개 같은 스모그 때문에 경관의 모습이 희미했지만 태양이 떠오르면서부터 농촌풍경은 빈 들판이긴 하지만 보다 여유롭고 한가해 보였다. 나는 혼자서 밀레의 만종을 머리에 그렸다. 밀레가 살던 시절의 프랑스 농촌과 같은 가난은 지금의 한국에는 없겠지만 그 대신 그림에서 보는 것 같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기도도 없어지지 않았을까.

  

오늘의 한국 농촌은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버렸고 60세가 가장 젊은 층에 속한다고 한다. 나는 어린 시절을 남도 시골마을에서 보냈다. 농사철에 어머니가 다른 아낙들과 더불어 간식(그곳에서는 이를 술참이라고 한다)거리로 무 섞은 마른 갈치조림과 나무새, 빛 좋은 김치를 장만해서 막걸리 통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이제 그런 정경은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만 아련히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 일행은 남 부여(夫餘) 휴게실에 잠시 머물면서 육개장과 국수로 아침을 때우고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신 후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교대하면서 운전대를 잡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중은 네 사람의 유우모어 경쟁 때문에 시종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차는 목포 톨게이트를 지나서 파인비치골프 코스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울은 영하의 날씨고 강원도에서는 진눈깨비가 퍼부어 도로통행이 어렵다고 뉴스가 나오지만 이곳 해남은 뉴스와 아랑곳없이 초가을의 온화한 날씨였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눈을 보지 않고 겨울을 지나는 해가 많은 지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만 자라던 귤이 이곳에서도 잘 자라면서 도처에 아열대 기후 권에서나 보이던 파초 모양의 코코넛 트리들이 가로의 이곳저곳에 삐쭉삐쭉 솟아 있고 귤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나무들이 보일 때마다 새삼 기후변화의 신비를 느꼈다. 반도남단에 자리한 해남군도 이제는 제주도 기후 권으로 들어간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이것이 축복인가 아니면 어떤 다가올 재앙의 신호일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로서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느껴졌다.

  

파인비치 골프장은 해남군 화원반도의 해변을 27홀의 골프장으로 개발하면서 바다 사이를 낀 계곡과 숲과 해송의 원형을 보존한 점이 훌륭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몬트레이 근처의 Pebble Beach가 태평양을 바라보는 낭떠러지를 골프장의 풍경 속에 담았다면 파인비치는 잔잔한 남해바다와 나지막한 섬들을 전망 속에 담아 스릴보다는 안온한 느낌에 아기자기한 맛을 더해준다.

  

나는 1986년 방미 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로 있던 M선배 덕분에 1박 2일의 Pebble Beach 골프코스를 라운딩 할 수 있었다. 서부 태평양의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특히 석양 녘 주황빛갈로 물든 해안코스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은 잊을 수없는 추억이다. 경치에 취해 호기를 보이다가 백구방생(白球放生)을 여러 차례 하는 바람에 스코어는 평소 기록을 훨씬 상회했지만 그때 내심을 가득매운 유쾌 지수(Comfortable Index)는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전신을 근지럽게 한다.

  

파인비치도 설계나 경관에서 페블비치에 못지않다. 맛이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 건축예술로 비유한다면 페블비치가 석가탑이라면 파인비치는 다보탑이라고나 할까. 11월 하순의 날씨에도 파릇파릇한 녹색의 양 잔디를 밟으면서 라운딩을 하는 것은 서울 근교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운치였다.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봄의 카펫위를 걷는 기분이 느껴쪘고 맑은 공기로 하여 감기기운으로 가끔 흘러나오던 콧물도 딱 멈춰버렸다.

  

파인 코스에서 비치코스로 이동하는 소로주변에는 봄의 들녘을 누비는 민들레꽃을 꼭 닮은 철머우 꽃들이 곱게 피어있었다. 나는 철머우 라는 꽃의 이름을 이곳에서 캐디아가씨에게 처음 들었다. 늦가을에 피는 민들레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첫날은 파인코스와 비치코스를 돌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비치코스에서 스타트해서 오시아노로 끝났다. 27홀의 홀마다 특색이 있고 또 풍향이 다르기 때문에 저공비행하는 클럽을 잡는 것이 늦가을 라운딩에는 유리할 것 같았다. 동행한 친지들은 모두 골프에서는 나보다 상수(上手)들이지만 나 때문에 스코어 카드에는 신경을 끄고 매 홀을 즐기면서 라운딩 했다.

  

첫날 저녁식사를 위해 해남읍내로 이동하는 도중 우리는 이곳이 고향인 C형의 안내로 조선 광해조 시대의 문인 고산(孤山) 윤선도의 유적지 녹우단에 들렸다. 해질 무렵이어서 자세히 관광할 시간은 없었지만 조선조에서 벼슬길에 올랐다가 낙향을 거듭하던 절충파 선비의 고향이 그를 잊지 않고 그의 생가와 오우가(五友歌)로 유명한 신중신곡의 발상지를 잘 보존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관광자료에는 고산문학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표현하고 있다.

  

내가 오우가를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배울 때만해도 세계문학에 대한 안식이 전무하여 고산 문학의 문학사적 위치를 촌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으로 옥중에 갇혔을 때 읽은 미국의 초월주의 작가 Henry D. Thoreau(1817-62)의 Walden Pond의 분위기와 기맥이 통하는 문인 같았다. 살았던 시기도 어쩌면 비슷했다. 머릿속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던 오우가를 다시 떠올려 암송해 보는 것도 중고생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점화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당도한 식당은 “땅 끝 기와집”으로 불리는 해남에서 가장 이름난 한식집이다. 과거에 명성을 날리던 천일식당보다 요즈음에는 더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러나 음식들은 요즈음 서울에도 전통음식점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내세울만한 특 미는 없었다. 

 현지에서 생산된 막걸리와 약주를 마셨으나 반평생을 서울의 술 문화에 젖은 사람에게는 신통찮았다. 이제 한국음식이 지방마다에서 가졌던 특 미는 간혹 먹게 되는 일품요리에서는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전통 한식은 거의 보편화되어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었다. 해남군청에서 근무하는 C친지의 지인이 식사에 동참했다가 해남 쌀의 밥맛이 좋다고 칭찬한 바람에 5Kg 들이 쌀 상자를 하나씩 선물로 받게 되었다. 이것이 참가상(參加賞)이 된 셈이다. 

  

이튿날 8시 30분에 비치코스-오시아노 코스로 라운딩 했음은 앞에서 말 한대로다. 오시아노 코스는 바람이 덜 타는 곳이어서 골프의 스코어는 어제보다 더 향상 되었다. 바다를 향해 내리 쏘는 쇼트홀과 바다와 바다사이를 230야드 가량 벌여놓은 곳을 넘어야 하는 티샷 코스는 나에게는 다소 도발적이었지만 운전시험에 합격하듯 나는 도강에 겨우 성공했다. 금년 들어 내 골프의 비거리(飛距離)가 다소 개선된 것 같아 즐거웠다.

  

골프를 끝내기가 무섭게 목욕을 간단히 마치고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그린식당을 향해 차를 달렸다. 모처럼 낙지 요리로 오찬을 즐기기 위해서다. 막걸리에 낙지볶음과 초무침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서울에도 낙지요리집이 많지만 갯벌낙지는 드물고 중국에서 수입한 낙지로 요리하기 때문에 낙지 맛도 다르고 질기다. 그러나 이곳만은 갯벌낙지를 그대로 요리하기 때문에 전통 맛을 잘 살려냈다. 나는 종전대로 낙지 대가리를 잘 먹었지만 일행 중에는 서울특별시장이 암을 유발할 요소가 낙지머리 속에 들어있다는 경고를 의식해서인지 손을 대지 않았다.

  서울특별시장의 경고는 그후 식약청에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발표해서 큰 논란은 사라졌지만 유독성 발언의 여파는 이 지역으로 몰려들던 낙지 마니아들의 수를 많이 줄였다. 낮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 오찬 손님들이 다 떠난 뒤겠지만 과거에 비해 그린식당이 한가해진 것은 사실이다 주인도 이 사실을 시인했다. 나는 한평생 낙지머리를 특미로 알고 먹은 사람인데 이제 서울시장 말 한마디 듣고 먹지 않는다는 것이 꼴을 더 우습게 만들 것 같았다. 나는 한평생 먹어 생긴 면역력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삶은 낙지 머리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 일행은 오찬을 마친 후 목포 시내를 관통, 서해안 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오던 길을 다시 달리는 것이다. 논산을 지나면서부터 스마트 폰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으로 붐비는 길을 피해가는 서울 진입작전을 세워 저녁 8시 서울에 당도했다. 

 주말부부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고속도로 길은 이미 길고 넓은 주차장으로 변했지만 오산으로 진입해서 서울-용인 간 고속도로 코스를 잡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늘 우리 일행은 남들보다 쉽게 귀경하는데 성공했지만 앞으로 스마트 폰이 더 대중화하면 서울 용인고속도로도 또다시 붐비는 주차장 형 도로로 변하는 것은 숙명일 것이다. 1박2일의 파인비치 골프여행은 두고두고 추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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