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유세희 박사의 "수교20년에서 본 한중관계전망"강의안 전문2019-08-09 17:20:27
작성자 Level 10

이글은 한중문화협회의 중국문제 공개강좌인 한중수요포럼 (2012년 3월 21일 오전 7시30분부터 09시30분에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행해진 강의록 전문이다.  

수교20년에서 본 한중관계전망

-----한중문화협회 제3회 중국강좌에서 행한 유세희 박사 연설문-----



금년으로 한중수교가 된지 어느 듯 20년이 되었다. 20년 전인 1982년 6월, 서울무역대표부에 근무하던 중국공사가 나에게 한국의 중국전문가 10여 인을 중국에 초청해서 한중현안들을 격의 없이 토론하고 싶다면서 방중단 구성을 제의해 왔다. 

수교 전에는 양국이 서울과 북경에 무역대표부를 두고 주로 경제를 중심으로 협력을 해왔는데 한국은 정식 수교를 서둘렀던 반면에 중국은 북한을 의식한 나머지 “물이 흐르면 고랑이 파이기 마련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여러 해 동안 수교를 미루어 오던 중이었다.
 
중국 쪽에서 비용을 부담해 가면서까지 방중단 구성을 요청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어서 드디어 수교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특히 방중단에 기자들이 몇 사람 포함되기를 바라는 주문이 더욱 이러한 느낌을 갖게 하였다.

 북경의 현대국제관계연구소에서 갖은 첫 회의에서 우리 측은 “그동안 한국은 늘 수교를 하자고 하고 중국은 늘 기다리라고만 하지만 수교를 끌면 끌수록 손해는 중국이 더 보니까 이제는 한국도 더 이상 수교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우리의 불쾌감을 넌지시 내비쳤다. 

이에 중국 측은 그들의 故事 한 토막을 인용하는 것이었다. 옛날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용을 너무 좋아해서 자기 집에 온 통 용을 그려 놓고 즐겼다. 하늘의 용이 이를 보고 기특한 나머지 “네가 나를 그토록 좋아하니 내가 직접 실물을 보여 주겠다”면서 그 집을 찾아갔는데 정작 실물이 나타나자 그 사람은 놀라서 도망쳐 버렸다는 것이다. 즉 이제 중국이 수교를 하려고 하는데 왜 뒤로 물러서느냐는 뜻이다. 이에 우리 쪽에서 “이번에는 용이 분명히 오냐?”라고 묻자 그들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처럼 故事를 인용하면서 자기네들의 심중을 완곡하게 들어내 보이는 데 숙달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암시처럼 한중수교는 곧 이루어 졌다.

  Ⅰ. 수교목적

  가. 수교당시의 목적

 먼저 한중수교를 둘러싸고 수교당시의 두 나라가 가졌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 측에서는 북한에 대해 정치, 안보 면에서 북한을 견제하는 한편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수교목적이었다. 당시 한국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정도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경제적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한 편 중국은 한중수교를 통해 대만을 고립시키고, 한국으로부터의 경제협력을 유도하여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여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곁들여 한 가지 지적할 사실은 한중수교로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1990년 북한은 한국과 소련 간에 수교가 이루어지자 자기들로서는 이런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핵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소련에 표명했다. 이에 중국은 북한을 고립에서부터 국제사회에 끌어 드림으로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를 완화시켜 보고자 했다. 그래서 취한 첫 조치가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이었다. 즉 중국은 북한에 대해, 전 세계를 상대로 수출대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남한의 유엔가입을 중국이 북한만을 생각해서 계속 가로 막기에는 더 이상 명분도 없고 역부족임을 말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한 동시가입에 동의하도록 설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태도 변화 때문에 마지못해 남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한 후에도 여전히 핵 개발을 계속하였다. 이에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두 번째의 견제 조치로서 남한과의 수교를 결정한 것이다. 남한과의 수교로 중국이 북한에 주려고 했던 메시지는 남한은 더 이상 중국의 적대국이 아니니 핵 개발 등으로 남한에 대한 호전적 태도를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온 것이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조중 군사동맹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유사시 자동적으로 북한을 돕는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 표명이었다.

나. 수교이후의 상황

 현재 한국에 있어서 중국은 수교 당시와는 달리 경제적로도 매우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중국은 2003년 이후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되었고 최대 투자대상국(2004년 63억불)이다. 아울러 2008년 이후에는 한국 최대의 교역국이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노무현 집권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는 미국을 제치고 중국을 제1의 우방국으로 인정하자는 결의가 63대 23으로 이루어진 바도 있다. 이러한 정치권의 친중 무드에 편승, 노무현대통령은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제안하여 국제사회가 광범히 실시하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중국과 보조를 같이하여 참여를 거부했고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한 유엔표결 시에도 불참하거나 기권하는 등 중국과 보조를 같이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드러냈다.

 MB정부의 출범이후, MB의 방중으로 한중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가 되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당시 한중관계는 중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단순수교관계였으나 1999년 김대중 정권이후 협력적 동반자관계로 표현되었고 2004년 노무현 정권성립이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양자관계의 표현방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2009년 MB정권이후에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변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국가 간의 수교수준을 5등급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내용은 ①단순수교관계 ②건설적 동반자관계 ③협력적 동반자관계 ④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 ⑤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등급설정의 구체적 조건이 무엇인지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고 중국정부의 내부적 의사결정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동시에 중국의 이러한 관계설정에 관한 표현에 상대방의 동의가 있을 경우 양자관계를 중국은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는 전통적 우호관계나 혈맹, 또는 脣齒관계로 표현하지만 상황에 따라 일정한 것은 아니다. 현재는 실제로 상당한 갈등요소를 가지고 있는 미중관계나 중일 관계가 모두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 때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부터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표현되었다고 해서 양자관계가 격상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이런 표현은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는 협력하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는 협력하지 않는 부분도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외교의 修辭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 현재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중심목표

  가. 기본방향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대외적으로 공식 발표되고 있는 바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이고 또 하나는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어야 중국은 대미, 대서방, 대소 관계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운신의 여유를 갖게 되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중시한다. 그러나 중국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어디까지나 현상유지에 의한 평화와 안정이라는 점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의 정책은 분단 고착화 정책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해관계와는 상충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중국은 북한의 호전적 폐쇄적 정책도 한반도 안정화의 주요 저해요소로 보고 있지만 미국의 대북 및 대중국견제정책을 더 큰 저해요소라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군사적견제와 인권문제를 내세운 대북, 대중국 견제를 안정 저해요소라고 주장한다.

나. 중북관계

 중국의 북한과의 관계를 보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순치관계, 혈맹관계를 내세워 북한정권을 지탱하도록 지원해주는 한편 북한도 중국이 필요로 하는 한반도 안정화에 협력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실 북한은 중국이 추구하는 한반도정책의 두 가지 목표인 한반도의 안정과 비핵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제일 중국에게 해를 끼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대해 강도 높은 압력을 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강한 압력을 가할 경우 북한정권이 도괴되어 한반도가 매우 불안정해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하지 않을 수도 없고 가할 수도 없는 것이 중국의 딜레마이다. 

김정일이 죽기 이전을 포함해서 김정은의 등장 이후까지최근 1-2년 동안의 중국의 태도를 보면 중국은 이미 북한의 핵개발 저지는 실질적으로는 포기한 인상을 주고 있다. 명확한 태도 표명은 없고 앞으로도 그러 하겠지만 북한 핵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개발 저지보다는 관리 쪽에 보다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정책 선회는 북한 내부의 사정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 중국의 한반도정책결정변수

 중국의 한반도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는 동북아 국제정치구조를 위시하여 주요 국가들의 대한반도 정책과 남북한관계 등의 외부적인 요소와 중국의 정치구조와 경제력과 군사력을 포함한 내부적인 요소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관계와 중국의 국력 수준, 그리고 대한반도정책을 결정하는 중국 지도자들의 상황에 대한 인식능력이 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중에서도 시간관계상 오늘은 중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현재의 국제관계를 어떻게 보며 어떻게 대응하려 하는지에 관하여 설명하려 한다.

 중국정책결정자들의 사고방식이나 경향은 대외정책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객관적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지도자들이고, 그들은 나름 데로의 사고방식에 의해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좀 과장한다면, 중국의 긴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일종의 DNA라 할 가, 일종의 사고의 틀이 만들어져 있는데,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에 능하다는 것을 중국지도자들의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정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Hans Morgenthau의 대표적인 저서 Politics among Nations에서 강조된 “힘이 곧 정의(power politics)”가 되는 정치적 현실주의(political realism)와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Ⅲ. 중국인들의 자기중심적 사고

 

가. 자기중심주의(egocentricism)

 서양의 경우 30년 전쟁의 결과로 소집된 1648년 웨스트팔리아회의를 계기로 성립된 이른바 Westphalia체제하에서 단위 국가대 국가 간의 관계를 다루는 국제관계가 형성,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중국에서는 BC.5세기 전부터 夏殷周 를 거치는 세습왕조와 BC722년에서 BC241년으로 이어지는 춘추시대와 BC475년부터 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BC221년까지의 戰國시대를 거치는 500년간 국가권력을 유지하는 전략전술을 발전시키는 한편 중국대륙의 中原과 변방의 군소국들과의 관계를 朝貢제도를 통해 관리하는 일종의 국제관계를 형성시켜왔다.
 
壬辰倭亂시 明나라가 朝鮮에 파병한 것은 中原이 설정한 국제질서를 파괴한 일본에 대한 응징차원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중국은 중원중심의 국제정치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변방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지도국으로서의 자국의 위상을 다지는데 주력해왔다.

 BC221년에 처음으로 진나라가 중국의 통일을 이룩한 후 중앙집권적 행정기구와 제도를 정비했는데 이는 서양보다 2000년이 빠르며 그 이후 중국의 중앙집권적 행정제도는 아직 까지 지속되는데 이는 역사상 전례가 없다할 것이다. 또 학문 면에서도 孔孟사상이 보여주듯이 춘추시대에 이룬 업적을 지금까지 답습할 정도로 일찍이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기초를 쌓았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서구의 산업혁명이전의 17세기까지만 해도 GNP세계 랭킹 1위의 대국이었다.

 중국의 자기중심적 사상은 중화사상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중국의 중원을 중심으로 삼고 변방 국가를 오랑캐 국으로 규정, 東夷 西戎, 南蠻, 北狄의 오랑캐들을 조공제도를 통해 관리하는 국제질서를 유지해왔다. 청나라시대만 해도 중국은 러시아 사람들을 洋鬼라고 칭할만큼 자신만이 으뜸인 자기중심주의에 강했다.

이런 바탕에서 나온 정치사상이 중화사상인바 중국인들은 정신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며 서구의 강한 압력 하에서도 東道西器(정신적인 것은 동양, 기능적인 것은 서양), 中體西用(중국을 중심에 두고 서양의 기술을 접목시킨다)는 주장하면서 서양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중국현실에 맞게 개작하는데 능하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중국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모택동 사상, 중국혁명을 러시아와는 달리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농민을 앞세워 실천하는 모택동 전략, 등소평의 사회주의 초기단계이론이 그 대표적 예이다.

나. 현실주의(실리위주의 사고)

 孔子의 가르침은 철저히 현세 위주의 사상으로 공자는 “살아있을 때도 현실을 잘 모르는데 죽은 다음의 세상을 어찌 알 것인가”하면서 종교적 관념인 내세관보다는 현실위주의 사고를 강조했다. 모택동도 실사구시와 실용주의를 강조했으며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도 모두 이점에서는 공통된다. 동시에 이해타산에 밝고 이익 실리추구에 능하다. 따라서 중국입장에서는 공산주의이데올로기조차도 도그마가 아니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즉, 현실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수용되어지고 있다.

 다. 훈련된 전략적 사고

 춘추전국시대의 대륙중원의 국제관계와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시작으로 10차례의 분열과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은 전략적 사고를 익혀왔다.

 毛澤東에 의한 중국통일은 중국이 이룩한 10번째 통일이며 이 과정에서 중국 전래의 전략사상이 잘 활용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지도층은 높은 인문학(文,史,哲)적 소양, 역사의식을 지녔으며 모택동이 시와 문학비평에 있어 높은 수준을 나타 내었던 것도 이러한 점을 잘 나타낸다. 

또 고전에서 현대사에 이르는 역사교육도 황포군관학교나 중국공산당 당 학교들의 커리큘럼에 포함될 정도로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수 교양으로 강조되고 이다.

 중국 전략사상의 자료로는 BC130-89년의 司馬遷의 史記130권외에도 수많은 四字성어로서 합종연형(合縱連衡)과 원교근공(遠郊近攻), 오월동주, 와신상담, 오자서(伍子胥)의 열전등에 기술되어 있으며 특히 司馬光의 資治通鑑은 북송시대인 1019년-1086에 나왔는데 이 책속에 수양제가 고구려를 30만5천명으로 침략했다가 2700명이 살아 돌아갔다는 기록을 담고있다. 특히 모택동은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17회 정독했다고 밝힐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진 책이다.
 
이밖에도 우리가 잘 아는 羅貫中의 三國志演義, 水滸誌, 六韜三略, 孫吳兵法,  武經七書등은 중국인들의 전략적 사고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양에서도 나폴레옹은 손자병법을 터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차 대전에서 패한 후 독일황제 Wilhelm 2세는 손자병법을 읽고 20년전에 이 책을 못 읽은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지도층은 이러한 전략사고를 내면에 깔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항상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BC1100년부터 1911년까지 3700회의 전쟁을 경험했다. Alastaine Johnson은 1998년 China Quaterly에 발표한 글에서 중국이 개입된 무력분쟁은 1949년부터 1992년까지 118건이었으며 이중 1950년에는 미국과 싸웠고 1959년엔 인도, 티베트, 1969년 소련, 1979년 베트남등과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국은 1949년 내전을 마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다음해인 1950년 한국에 출병해서 미국과 군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중국은 전쟁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결코 전쟁을 피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세계정치에서의 위상을 세워나가는데도 익숙한 나라다. 한국전 당시 중국은 미국과 싸우기 위해 서 출병하면서 중국본토에서 미국과 싸우는 것보다 한반도에서 싸우는 것이 중국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吳修權 회고록)

라. 전략적 사고의 실천 사례

 중국은 전략적 사고에 있어서 최선은 패자(覇者)가 되는 것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以夷制夷之計(오랑캐의 힘을 빌려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책략)를 통해 세력균형을 도모, 자국의 실리를 도모하는데 능하다. 예컨대 1882년 조선이 미국과 한미수호조약을 체결한 것은 청나라 외무대신 李鴻章의 권유로 이루어진 것인데 날로 국력이 줄어드는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일본이나 러시아의 일방적 영향권으로 조선이 말려드는 것을 막아보려는 세력균형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또 중국이 1971년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고 미중관계 개선을 시도한 것도 미국의 힘을 빌어 소련의 사회주의적 제국주의의 위협을 막기 위한 현대판 以夷制夷之計의 일종이다. 미국이라는 다른 제국주의 세력과 제휴, 소련제국주의의 위협에 대처한 것이다. 이때 毛澤東은 미국이 소련을 강하게 견제하지 않으면 중국은 땅을 깊게 파서 식량을 비축, 소련과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은 좋은 예화이다. 당시 중국은 식량사정도 어려웠지만 모택동은 소련견제에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심리전을 대내외적으로 강화했다.

 1980년대에는 중국의 등소평이 대외정책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앞세웠다. 즉 칼날의 빛을 칼 속에 감추고 은밀히 실력을 기르자는 국력배양의 철학을 주창했다. 전쟁을 피하면서 국가의 힘을 기르는데 진력하자는 책략으로 다른 나라의 경계심을 이완시켜 중국에 대한 견제를 막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중국은 1990년대의 접어들어 국력에 자신이 붙으면서부터 대외정책에서 입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장쩌민은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내세우면서 국제정치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어야 할 때는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과 발언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최근 후진타오 주석은 G2로 커진 중국국력신장을 배경으로 화평굴기(和平崛起)론을 제창하면서 중국이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뒤지더라도 외교정책에서는 강대국으로서 미국과 다른 견해를 과감히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단독으로 맞서기보다는 2005년부터 오랜 기간 관계가 소원해졌던 러시아와 다시 제휴,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한편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끌어들여 러시아와 샹하이협력기구(SCO)를 조직했다.

앞으로 중국의 5세대지도자로 부상되는 시진핑(習近平)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돌돌핍인(咄咄逼人) (꾸짓고 다그친다)이라는 4자성어를 내놓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구체적 내용은 밝혀진 바 없다.

                       Ⅳ. 한중관계의 전망

가. 비대칭적 관계의 확대

 오늘의 중국은 한중수교당시의 중국이 아니다. 한국이 1대1로 맞설 수 없는 대국이다. 중국의 모든 국력, 특히 경제력이나 군사력 면에서 한국이 중국과 대등한 관계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비대칭적 관계(Asymmetric relation)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나. 앞으로의 변수

앞으로 한중관계에는 양국의 국내정치차원에서 불확실성과 가변성이 잠재해 있다.

한국은 북한변수로 말미암아 국내정치가 동요가능성이 예상된다. 남남갈등이나 북의 도발, 남한 내의 일부 대북동조세력들의 발호로 국내정치안정화에 부담으로 작용할 요소가 없지 않다

한편 중국역시 내부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 예상된다. 중국의 경제발전에 중국의 정치가 따라 가지 못하는데서 내부의 갈등과 긴장이 조성된다. 현재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38%로 1일 평균 인터넷 방문자가 3억을 넘어서며 중국의 네티즌의 총수는 5억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휴대폰 보급률이 9얼 7000만 대로 집계되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공산당의 일당 지배유지에 큰 부담과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해외유학파들이 대거 귀국하고 유사이익단체들이 나날이 증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국토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기 힘든 상황이 조성되고 정치적 다원주의에의 요구도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역시 내부에서 변화와 개혁에 대한 압력이 나날이 높아지기 때문에 중국공산당 정권 자체가 변화냐 개혁이냐를 위요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개혁을 요구하는 바람은 나날이 갈수록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Ⅴ. 결론

 남북한이 대치하고 미중관계가 우호적이지 않는 한 한중양국은 수교에도 불구하고 자주 암초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증대한다고 해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변할 때는 양국관계는 항상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 한중관계의 한계이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단순히 양자관계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미, 중, 일, 러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이기도 하다. 북핵문제의 해결에도 주변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통일에도 주변국들의 영향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고 하겠다.

 한반도는 이처럼 주변 국가들의 개입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한중간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한국 측의 약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만큼 한중관계는 가능한 한 많은 사안별로 Positive-Non-Zero Sum(게임의 총화가 플러스가 되는 상생관계)을 만들도록 외교적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숙달된 전략적 사고가 요구된다.

 하나의 예로, 노무현 정권 때 내놓은 한반도 균형자론은 전략적인 사고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정책의 제시었다. 즉, 한국이 한반도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균형자가 되려면 우선 주변국들 보다 힘이 있어야 하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도 끊어야 한다. 균형자론은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만 손상시켰고 어느 국가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도 외면했고 자칫하면 한반도 문제의 논의에서 한국만 배제되는 꼴을 자초할 수도 있었을 정도였다.

한국은 앞으로 미중양국과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을 안보 면에서 확실한 우방으로 붙들어 매 놓지 않는다면 중국이 보는 한국의 전략 가치는 급락할 것이다. 오늘날 국내 일각에서 제기하는 반미운동은 한국이 민주국가임을 증명하는 자료가치 이상을 넘어서는 운동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자국의 전략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게 되는 우를 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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