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한중문화협회역사 32019-08-04 18:37:12
작성자 Level 10

조소앙(),

한국 측의 핵심 인물로는 한국독립운동의 저명한 지도자인 조소앙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한국임시정부는  즉시 중국의 국민정부와 함께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조소앙이 한국임시정부의 외무부 장관의 자격으로 중국 정치계에서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는 김구 주석과 협력하여 수 차례 강연과 대담을 가지면서 국제사회가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할  있도록 노력하고 동맹국으로부터 물자원조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손과의 강연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소앙은 유엔기념일을 빌어 답변형식의 대담을 가졌다. 

 

한국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이후, 국은 동맹국에게 바라는 바가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식적으로 한국 정부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적으로 한국을 원조하여 함께 싸워서 공동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해방을 원조하는 것은 바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정략이다. 한국은 일본의 2분의 1의 인구를 갖고 있으며, 가치가 몇 천만에 해당하는 물자의 공급능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아닐 수 없다. 적들로부터 이처럼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빼앗을 수 있는 가장 유효 적절한 방법이 바로 한국 정부를 승인하고 한국 정부를 지원해 줌으로써 거대한 인력과 물자가 적에게 이용되지 않고, 동맹국이 일본 왜구를 무찌를 수 있는 하나의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이다. 오늘날 한국 정부 및 광복군의 구호의 하나가 전 한국 민중이 무장하는 것이고, 그 다른 하나가 세계 각국이 한국 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침략을 반대하는 국가들은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항일전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굳게 믿으며, 중국의 건국 또한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외침이 전 세계 각 민족과 각 국가들로부터 동정 어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시 한국임시정부에 대한 승인 여부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사이, 중국국민당 고위층 내부를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임시정부는 당장 미국 등 동맹국의 한국임시정부에 대한 승인을 기대하는 것은 잠시 어렵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중국이 단독으로 한국임시정부에 대한 승인을 얻어내는 데 힘을 쓰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조소앙 등이 회의 창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중요한 동기 중 하나가 바로 중국국민당 정부와 접촉을 강화하여 중국국민당 정부가 하루 속히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2) 한중문화협회 창립대회 개최

  한중문화협회는 중경 방송빌딩에서 창립대회를 거행하였다. 손과 위원장이 대회의 주석을 맡았고,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4백여 명이었으며, 주요 인사들로는 중국 측의 군정 요원인 오철성(吴铁), 백숭희(白崇禧), 왕총혜(), 풍옥상(玉祥) 및 군무부장인 김약산(金若山),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이청

(青天) 등이다. 전쟁 당시 중경에서 열린, 모처럼 규모가 방대하고 영향력이 있는 집회였던 것이다.

 

손과의 개회사


한국이 함락된 이후 동아시아 민족들은 수십 년 동안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중국의 항일전쟁에 대한 주목적이 오로지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것뿐 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이룩하는 것은 물론, 특히 일본 침략세력들을 물리치고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수립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과 연합하여 자유와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함으로써, 공히 민족평등의 임무를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한중 양국의 민족이 손을 잡고 이 협회를 창립하는 것은 한중 양국 민족의 유대와 단결을 촉진시켜 세계의 정의와 한중 양국 민족의 독립, 자유, 평등을 쟁취한다는 아주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중문화협회연구 중에서)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