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한중문화협회역사 72019-08-04 18:40:56
작성자 Level 10

회의 결정사항

1.    한국어 교습소 설립

2.    동방언어학교에 추가 한국어과 설립 안을 교육부에 건의

3.    국립 각 대학에 한국문제 강좌를 증설

4.    한국의 역사, 지리, 혁명, 문화 등의 서적 편집 출판

5.    한국문제 자료실 등 설립

 

 

 

한중문화협회 창립관련 특기사항

1.    중국측에서 한중문화협회의 창립을 중요시 함.

2.    다른 여러 외국 문화협회의 설립과 비교해 보면, 중국 정부는 한중문화협회에 대한 예우를 정중히 하고 실질적인 원조에 강도를 높였는데 예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었음. 

3.    참여자의 수준 높음. 한중문화협회의 이사회와 감사회 구성원의 수준과 직위는 예전에 설립되었던 각종 한중협회보다 그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전쟁 시 다른 외국의 문화협회보다수준이 훨씬 높았다. 한중문화협회에서 추대한 명예이사에는 중국 국민당 당국의 군정() 수뇌부도 포함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은래와 같은 중국공산당의 유명 지도자와 곽말약(郭沫若)같은 문화계의 저명인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국민당 정부의 입법원장, 검찰원장, 고시원장은 모두 이사 혹은 명예이사로 등재되어 있었다. 한국 측에서 참가한 구성원들도 한국임시정부라는 튼튼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즉 한국독립운동의 유명 지도자 이승만(李承晩), 서재필(徐載弼), 홍만호(洪晩湖), 김규식(金圭植)과 한국임시정부의 장관인 조소앙(趙素昻), 김약산(金若山), 장건상(張建相)및 광복군 총사령관인 이청천처럼 명예이사와 이사직으로 등재된 뛰어난 인재들이 여기에 모두 모여 있었다. 

4.    한중문화협회는 전쟁 시 다른 외국문화협회처럼 명의상으로는 한중 양국의 친목단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정부 측이 시행한 국민 외교의 형식 중 하나로, 중국 정부에서 이를 주도하고 있었다. 한국은 중경에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두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한국 친구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창설되었고, 현재 한중문화협회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항일전쟁과 중국의 건국에도 도움이 되어 주었다

5.    사실 한중문화협회는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직한,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최초의 민간단체였다.

6.    조직의 엄격성이다. 한중문화협회는 비교적 완벽하고 엄격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조직이었다. 이 협회는 이사회와 감사회를 설치하여 지도기구로 삼았고, 연락, 연구, 홍보를 담당하는 3개의 위원회를 설립하여 이사회의 보조기구로 삼았으며, 조직, 연락, 연구, 홍보라는 4개의 업무보조기구를 설립하여 한중 양국의 인사들이 부주임의 직책을 각기 나누어서 맡았다. 한중 양국의 정부 비서실장의 사인을 통해 업무를 관장했고, 업무처리가 아주 깔끔하게 처리되어 업무효과가 매우 뛰어났으며, 훗날이 협회가 활동영역을 넓히는 데 가장 중요한 조직적인 기초를 다졌다. 

7.    정치적으로 적에 대항하자는 분위기가 농후했고, 문화적인 색채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특수 환경과 한국의 독립과 광복이라는 긴박한 임무로 인해 한중문화협회가 창립이 되자마자, 그 즉시 한국의 독립과 광복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목표로 삼았다. 한국 독립의 지위를 확립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아내며, 중국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강도를 높이는 것을 이 협회의 3대 업무 목표로 삼았다. 상대적으로 문화교류는 한국의 반일 독립이라는 정치목표의 책략이자 그 수단이 되었을 뿐, 사실 문화적인 교류가 널리 전개되지는 않았다.

 

☞ 한중문화협회 3대목표


1.    한국 독립의 지위를 확립한다.

2.    국제사회에서 한국임시정부의 승인을 받는다.

3.    중국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의 강도를 높인다.



(『한중문화협회연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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